창비 문학상 합동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창작과비평사에서는 4개의 문학상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신동엽창작상, 그리고 창비신인문학상이지요. 오늘 11월 29일, 시청에 있는 프레스센터에서 4개의 문학상의 합동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윤정모 선생님을 따라 시상식장에 들어섰습니다. 오른쪽 맨 뒷 자리가 비어있기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기까지 고은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 악수를 하는 귀중한 경험을 했지요. ^^;

이윽고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식이 시작되었습니다.


1. 제 21회 만해문학상
수상자 : 시인 김규동(81) [느룹나무에게]

2. 제 8회 백석문학상
수상자 : 시인 고형렬 [밤 미시령]

3. 제 24회 신동엽창작상 (구 신동엽창작기금)
수상자 : 시인 박후기(38)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는다]

4. 2006년도 창비(창작과비평사) 신인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 고은강(36) [푸른 꽃 외 4편]
평론 부문 수상자 : 김종훈(35) [장자(長子)의 그림, 처남(妻男)들의 연주: 문태준·황병승론]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규동 시인, 박후기 시인, 고은강 시인, 고형렬 시인, 김종훈 평론가]


지루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노려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실려 있는 창비신인상 수상작들을 읽었습니다.
순식간에 시상이 이루어지고, 어느새 수상 소감 발표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제 가슴속에 남은 대로 얼추 복원을 해 봅니다. 사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말씀들이 있었지요.

사회자 ) 연말 늦은 때에 시간을 내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리며, 수상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수상 소감은 가급적 짧게 부탁드립니다. 순서는 시상 역순으로 하겠습니다. 우선 김종훈 선생님의 수상 소감을 듣겠습니다.

김종훈 평론가 ) 우선 여러 선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은숙 님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창비의 계간 창작과비평 2006년 겨울호에 실린 당선소감을 쓸 때 심사위원님께 은숙 님 이야기를 꼭 넣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정말로 수록해주셔서 프로포즈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사회자 ) 네, 이번 창비 신인평론상은 김종훈 선생님께 상보다 더 값진 것을 안겨드렸습니다. 계속해서 고은강 선생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고은강 시인 ) 이렇게 평소에 뵙고 싶었던 선배님들을 한 자리에서 뵙게 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 아까 제가 짧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 짧게 해 주셨네요! 이어서 박후기 선생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박후기 시인 ) 안녕하세요, 박후기입니다. 오늘을 위해 원고를 준비해 왔습니다. 앞의 두 선생님께서 조금 짧게 해 주셔서, 저는 조금 길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후배들과의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후배가 "이번에 형이 받는 상이 신동엽과 관련된 상이니까, 시상식장 입구에 [껍데기는 가라!] 라고 플래카드를 걸어놓겠다!"라고 선언을 했는데, 오늘 와보니 걸려 있지 않네요. 하하.
사실 신동엽창작상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혹시 제가 쓴 시가 껍데기뿐인 것은 아닐까, 내가 쓴 시가 정말 값어치 있는 시일까. 사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권의 시집을 냈었는데, 어느 시집에는 이런 말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쓴 모든 글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후일이 되더라도 시집으로 낸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부끄러운 말을 적었던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정말, 신동엽 선생님의 정신을 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 네, 잘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고형렬 선생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고형렬 시인 ) 오늘의 이 자리에서 저는 지루한 소감 몇 마디보다는 하나의 일화를 들려드리는 것으로 제 마음을 전할까 합니다.
히말라야의 산맥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명의 나찰이 소년의 앞에 나타나 짧은 구절의 시를 읊었습니다. 3행시의 첫 행이었지요. 소년은 그 시를 들은 것에 매우 기뻐하며 나찰에게 어서 다음 구절을 읊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찰은 코웃음을 치며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인 말에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어차피 말해 주어도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 저리 비켜라."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부디 다음 행을 들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나찰은 "지금은 내가 배가 고파서 시를 읊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라고 생색을 냈지요. 소년은 자신이 금방 마을에 가서 고기며 술이며 무엇이든 나찰이 원하는 것을 가져오겠다며, 나찰에게 당신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고 물었습니다. 나찰은 조소하는 눈빛을 띠며 "나는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 네가 어떻게 이를 구해오겠느냐!" 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소년은 그 말을 듣고는 오히려 기뻐하며, 그런 것이라면 자기의 살과 피를 줄 테니 쉬운 일이어서 다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두 행을 말해주기만 하면 틀림없이 몸을 바칠 터이니 어서 읊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놀란 나찰은 "어허! 이런 무의미한 시구를 읊는다고 진짜로 살과 피를 바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장난하지 말아라!" 하며 소년을 떠나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막무가내로 매달렸지요. 결국 나찰은 소년에게 다음 두 구절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를 다 들은 소년은 환희에 쌓인 표정을 지으며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사실 나찰이 읊은 3행의 시에는 시를 아는 이가 깨달을 수 있는 깊은 아름다움이 숨어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몇 번이고 시를 되뇌이고는 가까이 있던 나무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높고 크게 자라 절벽을 향해 뻗어있었습니다. 나무에 올라간 소년이 가지를 밟고 뛰어내리려는 찰나에 나무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차피 한번 들으면 그만인 그까짖 시구를 들은 것을 가지고 어찌하여 몸을 바치려고 하는가?" 그러자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있어 저 아름답고 훌륭한 시를 들은 것은 이 몸뚱아리보다 훨씬 더 값진 일이라는 것을 어째서 모르십니까? 오히려 나는 즐겁습니다. 겨우 이까짖 몸을 바치는 것만으로 저토록 아름다운 시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몸을 던졌습니다. 소년이 바닥에 닿기 전까지 천상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렀습니다.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 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역대 최고령의 수상자이시기도 한 김규동 선생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김규동 시인 ) 여러분, 오늘 시상식에 오셔서, 정말 너무 지루하셨지요? (일동, 네에-!) 그래서 이 지루한 마당에, 이 노인이 여러분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아아, 80먹은 노인이 하는 이야기는 듣는게 좋습니다. 이나이에 내가, 80먹은 노인이 여러분께 무엇 하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일동, 하하하하-!)
내가 말입니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그때 말로는 보통학교였지요. 보통학교를 다닐때, 공부를 참 더럽게 못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학교에서 보면 다들 교장선생님한테서 상장을 하나둘씩 받잖아요? 우등상이니, 봉사상이니, 개근상이니. 그런데 나는 공부도 못하고, 결석도 많이 해서 그런 상을 하나도 못 받았었습니다. 이러니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게, "저 망할놈의 교장이 왜 상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을 환장하게 하나!" (일동, 하하하하하!) 이랬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상이라는 거랑 교장이라는 거를 평생을 저주를 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손기정 선수가 메달을 따 왔단 말이에요? 그 이야기를 담임 선생님한테 듣고는 제가 막 울었습니다. 그러고는 운동장으로 뛰쳐나가서는 숨이 헐떡거리는 줄도 모르고, 막 운동장을 몇 바퀴고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내래 손기정이나 될테다-!" 하면서 말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체구가 참 작은데, 뭐 공부도 못하고, 나처럼 체구가 작은 사람이 운동선수를 할 수야 없는데, 아무것도 잘 하는게 없으니까,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혹시 내가 저능아가 아닌가 의심까지 했었으니까요. (일동, 하하하; )
그러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한 열여덟쯤 되서, 문학이라는 걸 알아서, 거기에 푹 빠졌습니다.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고, 그런데 문학이란게 이놈이 참 재미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시다 뭐다 막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외롭고, 고독하고, 그랬습니다. 잘하는 것도 없다, 나는 뭐 잘 나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쓰는 시도 남들한테 보여주려고 쓰는게 아니라, 그냥 막 쓴 거에요. 이러니 시를 쓰는 것도 나요, 그 시를 읽고 즐거워하며 잘 썼다고 칭찬하는 것도 나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문학상이다 뭐다 많이 나가는데, 나는 절대 근처도 안갔어요. 그놈의 교오자앙 선생님이 너무도 싫었단 말야. (일동, 하하하하하!) 저놈의 교장이 이제는 문학상이란 걸 만들어서 끝까지 날 괴롭히는구나! 그래서 상이라는 걸 내가 평생을 저주하면서, 근처에도 안 갔어요.
사실 상이라는 것이, 심사위원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고, 술도 먹고, 친하고, 그래야 받는거라는거,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지도 않고, 그러니까는 상이라는 거랑 애초에 거리가 멀었어요. 80먹은 노인은 알 건 다 압니다. (일동, 하하; ) 그런 제가, 80이 넘은 노인이, 상을 받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서 상을 받게 되었느냐.
사실 이 창비 심사위원을 하는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고형렬 씨에게 상을 줘야 하나, 도종환 씨에게 상을 줘야하나.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렇게 세 명이, 도저히 누구에게 A를 주자니 B가 억울하고, B를 주자니 C가 잘썼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이 있던 방의 창밖으로, 왠 키가 쬐그마한 노인이 하나 지나가버리더란 말입니다. (일동, 으하하하하!) 그러니까 심사위원 하나가, 아 저 노인좀 보소, 저 노인도 오랫동안 시를 써온 사람인데, 저 사람도 60몇년을 시를 써온 사람이오. 저 노인한테 주는건 어떻소? 그러니까 다른 심사위원 하나가, 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나도 저 사람 시집 좀 읽어봤소, 또 다른 심사위원 하나가, 나도 이견이 없소, 저 방금 지나간 노인네로 합시다. (일동, 하하하하하하!! ) 그 노인이 바로 접니다. (일동,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이 노인이 그 창가를 지나가는 바람에 상을 받게 되었다, 이 말이에요. 심사위원들하고도 친하지 않은 이 노인이.
그런데 내가 또 평생을 상을 저주하면서 살아온 노인인데, 60년을 넘게 그래온 사람이 이제와서 상을 받아도 되는가! 그래서 이걸 또 고민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상을 주는 곳이 어디냐. 창비란 말입니다. 내가 창비가 주는 상이라고 해서, 그래 좋다 창비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상을 받기로 한 겁니다. 창비는 약속을 너무 잘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문인들이 다 창비학교 출신이에요. 무슨 순수문학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보고 다방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면, 꼭 30분이고 40분이고 지각을 한단 말입니다. (일동, 하하하; ) 늦게 와서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데, 창비에는 그런 사람이 한명도 없어요. 꼬박꼬박 시간 약속 지키고, 일정 확실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상들이야 다 그렇고 그런데, 창비는 믿을 수가 있어서, 그래서 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일동, 짝짝짝짝짝짝) 감사합니다.

(일부 부분은 정도 이상으로 부정확한 면이 있습니다. =_=;)

자리를 마치고 나서는 단상 양 옆으로 놓여있는 뷔페! 저녁을 해결하고 보니 어느새 제 자리 앞에 소란을 피해 신인 시인상 수상자인 고은강(여) 선생님이 앉아 계시더군요. 친구분과 함께.

"아 그런데 나 이런데 처음 와서, 정말 정신없어."

뭐랄까, 어린 여고생의 이미지? 라는 느낌이 딱 드는 모습과 대사.

"저, 제가 첫 번째 팬이 되게 해 주시겠습니까?"

이 대사를 날리며 저는 갑자기 끼어들었습니다. 당황하는 고은강 선생님과 친구분.

"에에에...? 저, 사인같은거, 해본적이 없는데, 처음인데."

"제가 첫 번째 사인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겠어요?"

"에... 에에에. 네."

그렇게, 저는 고은강 선생님의 사인을 획득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 팬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고은강 선생님의 친구분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어머나-! 너 정말로 처음이었어? 진-짜 좋겠다."





식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윤정모 선생님께 졸업 축하 선물을 받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카메라 하나와 "나비의 꿈" 상, 하권이 들어 있네요.



정말, 지루하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그네고치기

2006/11/30 00:36 2006/11/3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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